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 직업군 리스트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상위 20개 직업군으로는 화가, 조각가, 작가, 작곡가 등과 같은 주로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이 뽑혔습니다. 이처럼 예술은 오랫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옛말이 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예술을 인간만의 고유한 일이라고 생각해온 이유는 예술에는 영혼과 감정이 담겨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감정이 없는 컴퓨터가 예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겠지요. 그래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사라질 직업 리스트에서도 예술가들이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예술은 영혼과 감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컴퓨터가 사람보다 예술을 잘하기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작곡가 데이비드 코프 (David Cope)가 위의 질문들에 답을 줄 것입니다. 그는 음악은 영혼과 감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표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전 시대의 음악들을 머릿 속에 흡수한 다음 그 음악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섞으면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데이비드 코프는 컴퓨터에 엄청나게 많은 음악들을 저장한 다음 저장된 음악들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해냈습니다. 그것이 협주곡, 합창곡, 교향곡, 오페라 등을 작곡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EMI (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 입니다.
▲ 데이비드 코프가 개발한 EMI가 작곡한 비발디풍의 오케스트라 음악 ▲
EMI는 하루에 바흐풍의 새로운 음악을 약 5,000개 정도 작곡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EMI가 놀라운 것은 하루에 창조해낼 수 있는 음악의 양 뿐만이 아닙니다. 음악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영혼과 감정이 없는 컴퓨터가 아무리 많은 곡을 만들어내더라도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EMI가 작곡한 음악을 듣고 '감동했다' 라고 말합니다.
한번은 EMI가 작곡한 곡과, 고전시대 유명 음악가들이 작곡한 음악을 연이어 틀고 청중들에게 그 중에서 어떤 음악이 사람이 만든 음악 같은지 선택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EMI가 작곡한 곡에 감동받았으며, 여러 곡들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만든 곡 같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지면서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은 작곡가들 뿐만이 아닙니다. 또다른 창조의 영역인 '작문'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EMI의 후속 모델은 작곡 뿐만 아니라 시도 창조해낼 수 있게끔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코프가 개발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만든 시들은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읽으면 사람이 썼는지 컴퓨터가 썼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고용정보원의 예측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로봇,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사라질 직업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던 예술가들도 곧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사라질 직업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단지 예술 영역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게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이것은 더이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던 일마저 로봇, 인공지능 컴퓨터 등이 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인간을 로봇, 인공지능과 구별지을 수 있을까요? "인간다움"이란 어떨 것일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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