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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아파트먼트 리뷰 대회] 이 책을 읽고 나는 너를 비로소 떠나보낸다

by 최숲 2021. 11. 21.

 

 

7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만나기로 한 날, 친구는 평소처럼 약속 시간에 20분 정도 늦었다. 나는 그날따라 친구의 지각을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동안 서운했던 점을 쏟아냈다. 친구는 내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20년간의 우정은 일순간에 끝나버렸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정이 한순간에 파탄에 이른 이후부터 나는 줄곧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20년 동안 쌓아 올린 우정이 그렇게 쉽게 깨질 수 있는 건지, 그날 나는 어째서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에게 폭발했는지 그 어떤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상처가 있는 <아파트먼트>의 주인공을 만난 뒤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는 작가라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대학원을 다니는 빌리를 자신의 영혼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빌리는 모두의 혹평을 받은 의 소설을 이해하고 칭찬해주는 단 한 명이었다. 마침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에 는 빌리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

 

가 빌리에게 제일 먼저 내준 것은 집이었다. ‘는 돈이 없어서 지하 창고에서 생활하던 빌리를 자신이 사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공짜로 지내게 해준다. 대고모 명의로 계약한 집을 불법 전대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는 그 아파트에서 6년 넘게 사는 동안 아무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빌리를 위해서라면 는 오랫동안 고수해온 규칙을 깨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와 빌리는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온종일 붙어 있다시피 한다. 그러면서 는 빌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데,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은 를 낙담하게 만든다. 빌리는 모든 면에서 보다 우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빌리는 와 전혀 다른 사람이기도 했다. ‘는 빌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진실을 애써 무시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우정을 지켜내기 위해 는 빌리에게 예전보다 더 헌신한다.

 

빌리는 둘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차지한 우위를 악용한다. 그런 빌리의 모습에 는 실망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에게는 빌리가 세상 전부인 것에 반해 빌리에게 는 자기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서다. 빌리가 떠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서, ‘는 충동적으로 빌리의 소설을 없애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우정은 파국에 이른다.

 

와 빌리의 우정은 표면적으로는 한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둘의 우정이 서서히 망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친구의 우정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지면서 천천히 끝에 이르지 않았을까. 아마도 우리는 와 빌리가 그랬듯이 앞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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